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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4
서울교회, 다른 교회를 섬기기 위해 태어나다
목사 이종윤ㆍ박사 이종윤 - 목회자의 길17

6월6일 현충일을 기하여 새벽5시 개전한 홍해작전은 삼천명이 삼천오백명으로 사천, 오천, 팔천을 넘자 주일 출석수보다 더 많은 성도들이 새벽 홍해작전에 참여한다. 조선, 동아, 한국, 중앙, 경향신문들이 길선주목사 이래 최대의 회개운동이라 칭하면서 충현 홍해작전을 극찬한다. 서울시내 택시가 새벽에 총동원되고 인천, 미아, 불광동 등지에서 버스를 대절해 교구식구들이 새벽을 깨우며 참여했다. 40일간 진행된 홍해작전 기간동안 부채의 4/5가 가려졌다. 이종윤은 헌금 설교한 것이 아니고 사도행전을 본문으로 조용히 강해했다. 교인들이 변화된 것을 체험했다. 홍해작전이 끝나자 철야기도를 교구별로 연속적으로 하는 여리고 작전을 했다. 그해 12월21일 헌당식을 하고 그날 헌금은 지진피해를 입은 알바니아 난민 구호금으로 보냈다.
이종윤은 기도원에서 제자훈련을 강행한다. 모든 제직은 반드시 유니폼을 입고 1박2일 프로그램에 참여케 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엔 500명 정도의 제직들이 버스로 기도원에 들어가 훈련받는 모습은 기드온 300명 군사훈련 같았다. 아시아 선교대회를 아시아 복음주의협의회와 함께 열어 1,800명의 아시아교회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대회를 열었다. 로잔2차세계대회(마닐라) 두 번째 저녁 전체모임에서 이종윤은 Local church에 대한 발표를 한다. 세계복음주의 협의회(WEF) 교회 갱신위원장으로 WCC 7차대회(칸베라) 신학점검위원으로도 활동한다. 로잔 2차대회후 AD2000 Movement 아시아 대표로 한국대회 준비위원장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이종윤은 국내외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점차 자리를 굳혀갔다.

그러나 사탄은 그것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마침내 상상도 못할 누명을 쓰고 이종윤은 충현을 떠나야 했다. 교회 분열만은 막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종윤은 즉시 미국으로 피신한다. 그 아픔과 고통을 누가 알랴! 발티모아의 어느 장로님 가정에서 밤늦게까지 예배, 기도, 예배, 기도를 했으나 위로가 없었다. 그 날밤 고요히 잠든 시간에 마14장에서 눈이 멎었다.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요한의 시체를 장사하고 예수께 아뢸 때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 빈들로 가셨다는 13절의 말씀은 이종윤을 도끼로 치듯이 완전히 쪼개놓았다. 예수님이 들으시고 아셨으면 됐지 사람의 인정이 왜 필요한가! 그는 자유를 얻었다.

Coram Deo 하나님 면전에서 사는 이의 환희를 얻은 것이다. 그 해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신임총장 Logan박사 취임식에 축하의 말을 하기로 초청 받은 바 있어 학교에 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하자 로간은 이종윤이 체류하고 있는 Baltimore에 차를 보내 만나기를 소원한다. 필라의 Holiday Inn로비에서 만난 두 사람은 흐느끼며 로간은 큰 소리로 기도를 했다. 로간은 당신 같은 사람 둘이 있으면 하나는 한국에서 다른 하나는 웨스트민스터에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학교에 너를 보내신 것 같으니 두 주만 기다려 달라 한다. 이사회 소집을 하여 당신을 우리 학교 교수로 청빙하겠다 한다. 이종윤은 대답을 못하고 듣기만 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겠다는 것이다. 이때 한국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고 아연실색을 한다. 성도들이 풍비박산 되어 흩어졌고 몇십명씩 따로 집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어느 성도는 교회에 대해 실망을 하고 절간으로 갔다는 소식이 왔다. 이종윤은 자신이 목사소명을 받을 때부터 50세 이후엔 목회를 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한 생각이 번개같이 떠올랐다.

그는 더 이상 머물수가 없어 즉시 필라델피아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날아 갔다. 누님댁에 머물면서 기도하고 생각을 정리한 후 그 지역에 거주하는 형제들을 모아놓고 미안한 마음을 토하고 기도를 함께 하면서 귀국결심을 발표한다. 인근 이발소를 찾아가 바울이 서원이 있어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밀 듯 이종윤은 삭발을 하고 귀국한다. 김포공항에 200명이상의 성도들이 귀국환영차 출영을 나왔다. 이종윤이 감격하여 눈시울이 뜨거워져 공항에서 기도를 하자고 모자를 벗는 순간 와- 하며 성도들은 삭발한 이종윤을 보고 흐느끼면서 기도했다. 그 날이 화요일인지라 이미 지난 주일에 창립예배, 공동의회를 거쳐 이종윤을 위임목사로 청빙했다고 한다. 수요예배 강단에 선 이종윤은 의연한 모습을 보였으나 속으로는 계속 울고 있었다. 교회당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배처소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성도들은 논현동 전인화 권사가 지은 새 빌딩에 입주키로 하고 4층에 이미 입주한 상가를 내 보내고 7층 전층을 사용키로 했다. 찬 마루 바닥에서 접는 의자를 강대상 뒤에 놓고 예배하는 성도들은 그날부터 매번 예배시마다 울음바다였다.

이종윤은 교회이름을 성경대로 하자고 했다.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처럼 지역명을 따는 것이 성경적이라 하니 누군가가 서울교회라고 외치자 모두가 놀랬다. 아직 교단 가입이 안되었으니 서울장로교회로 하였다.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이 설립위원들 가운데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렇다면 서울교회는 왜 세워져야 하나. 하나님의 섭리로 세워진 서울교회는 다른 교회를 섬기는 교회라는 사명을 갖고 태어났다. 1991년 추수감사주일에 교회 간판을 걸고 이듬해 3월부터 한국교회갱신연구원 목회자세미나를 개교한다. 강남 YMCA강당을 빌려 전국에서 몰려오는 500여명의 목회자들에게 김밥준비를 하는 권사회, 주차위원, 안내위원으로 수고하는 장로, 집사들의 수고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손과 발이 되어 이루어져 갔다. 이종윤이 시무하던 교회가 교계신문에 특별광고비를 들여 이종윤씨 가짜목사 사기 횡령 등의 죄목 광고를 의뢰하였으나 기독공보 광고국장이 신문윤리에 어긋나는 광고요 복음에 유익하지 못한 광고를 아무리 돈을 받았어도 실릴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를 거절하고 타신문사에 까지 모든 광고를 철회케 했다. 그후 서울교회는 합동측 수도노회에 가입청원 했으나 서울교회가 들어오면 큰집(?)이 나간다면서 가입 청원은 거절당했다. 그무렵 제직회에서 교단 가입문제가 안건으로 나오자 모든 제직들은 이종윤 목사 가는 곳에 서울교회는 함께 가는 것이니 목사님께 위임동의가 나오자 이종윤은 당회로 위임해 달라는 수정 제의를 하여 통과시켰다. 당회는 고려파나 개혁측 얘기가 나왔지만 갈팡질팡 할 무렵 지난번 충현교회 광고요청을 거절한 신문이 어떤 신문이었나요. 그런 양심이 살아있는 신문사가 소속하고 있는 교단에 들어가자는 의견이 나오자 우리 교회가 죽은 양심에 도전하기 위해 세워졌으니 그 교단이 어느 파냐고들 물었다. 기독공보가 통합측 신문이라고 하자 통합측에 가입키로 동의 제청이 나오고 쉽게 결정했다. 당회원들은 무릎 끓고 엎드려 감사기도를 한다.
(다음 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