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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7
아시아 27억 앞에서 강의하겠습니다.
목사 이종윤ㆍ박사 이종윤 - 목회자의 길16

이종윤은 캘리포니아 파사디나에 있는 Fuller Theological Seminary의 Summer School에서 공관복음서 강의 요청을 받아 학위받고 첫 강의를 한다. 한 학기분 Syllabus를 만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캘리포니아로 갔다. 라성 한인 신학교에서 야간에 강의도 했다. 이종윤은 한국에 세 장의 엽서를 보냈다. 연세대 신과대학, 총신대, 충현교회에 학위취득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어디서든지 먼저 부르는 곳이 하나님이 정하신 일터로 알고 가겠다고 기도한다. 그러나 의외로 제일먼저 초청편지는 새로 개교한 ACTS의 한철하 부원장의 청빙서였다. '아세아복음화'라는 교육이념을 갖고 창설된 ACTS(Asia Center for Theological Studies & Mission)는 아시아 신학연맹(ATA)이 아시아인의 두뇌 유출을 막기 위해 아시아에 고등교육기관을 세워 아시아 지도자를 배출하자는 뜻으로 세운 학교다. 초대 이사장 한경직, 학장 마펫, 부학장 한철하였다. 첫 교수진은 손봉호 이종윤, 마르린 넬슨이었다. 학교 재정난으로 손봉호는 외국어대에 화란어과 교수로 부임하였고, 이종윤이 첫 교수로 부임하여 교무처장, 학생처장을 겸하였고 카타로그를 만들었다.

학생4명, 교수5명, 세계에서 교수 학생 비례 최우수 학교다. 이종윤은 기도했다. 제가 오늘부터 아시아 26억 앞에서 강의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담력을 달라고 기도했다. 개교3년내에 Ph.D 소지자 17명의 교수진을 확보하니 단연 아시아 최고의 신학교육기관으로 자리 매김을 한다. 그때만 해도 학위소지자가 희귀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종윤은 연대, 장신, 서울신대에서 강의 요청이 있었고 강연, 설교 요청이 폭주했다.

공산권 선교 연구소를 개소하여 1979년 3월 1일 미국 키신저 국무장관이 북경방문 직후 4월 1일에 중공을 방문하여 지하교회 성도 27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북한선교를 위해 노르웨이 등 북구지역 선교단체들과 연계하기도 하였다. 복음주의 신학회, 복음주의 협의회를 조직하여 두 기관의 초대 총무가 되어 신학운동도 주도했다. 성경과 신학이라는 신학논문집을 창간하고 편집위원이 되었다. 이종윤은 교수로서도 탁월했지만 설교자로도 두각을 나타냈다. 새문안교회 강신명목사가 은퇴하면서 이종윤을 청빙한다. 그러나 ACTS를 위해 할렐루야교회를 창립한다. 7년6개월 목회하는 동안 2,500명이상 출석하는 급성장을 이루었고 안식년을 예루살렘 Tantur Ecumenical Institute로 가서 신약개론을 집필하고 주말마다 고고학자들과 성경지리를 연구했다. 귀국 후 할렐루야교회 최순영 장로가 인수한 전주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하여 4년동안 기독교 대학의 기반을 놓는다. 임기없는 총장이지만 이종윤은 가르치고 설교하고 글 쓰는 것이 본업인데 교육행정가로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고 사임을 원했으나 이사장 최순영장로가 동반 사임을 제안하여 교내 게시판에 방을 붙여 사의를 표하고 행방을 감췄다. 최순영 장로와 생사를 함께 하자고 했지만 그는 대학 인수시 부채에 대한 보증 때문에 이종윤만 사임할 수 있었다.

이종윤은 충현교회 2대목사로 부름을 받는다. 그가 기도한 대로라면 젊어서는 50세전에는 가르치고 그 후엔 목회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2년을 더 가르쳐야 되는데 김창인 목사의 은퇴시기 때문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억지로 끌려갔다. 무엇보다도 떠나는 일이 어려웠다. 필라델피아 제일교회를 떠날 때도 한 분밖에 없는 장로가 목사를 빼앗겼다고 그 교회를 떠나야 했다. 교인들은 목사집 지하실에서 직장도 가지 않고 철야금식 기도를 했다. 청년들은 통곡했다. 할렐루야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장로님들이 사표를 돌아가면서 반씩 찢어 날리면서 사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두 교회 모두 개척과정이기에 아직 젖 뗀 상태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종윤으로 하여금 떠나게 하셨다.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님이 주인이시고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충현교회가 소속된 수도노회가 충현교회에서 열렸다. 이종윤은 김창인 목사가 만나자고 해서 대학교 교무위원회의까지 미루고 교회로 정한 시간에 갔다. 그 시간에 노회가 개회되어 이종윤 목사 수도노회 가입의 건과 충현교회 당회장 건을 쉽게 통과시킨다. 이종윤은 영문도 모른 체 앉아서 어리둥절했다. 이번엔 세 번째 안건 이종윤 목사 위임목사 허락의 건이다. 그때부터 노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형교회 횡포라는 측과 대학원 나온 분에게 유치원 졸업 안했다고 졸업장 가져오라는 격이라는 등 대성이 오고 간다. 사연은 이러했다. 총회 헌법은 교단 신학교 졸업을 하지 않고 타 신학교를 졸업하고 타교단에서 안수 받은 목사는 총신에서 1년과정을 이수해야 한다는 항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종윤은 도미하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한 것은 사실이지만 도미전 총신3학년 1학기까지 수료했으니 1년과정 이상을 이미 이수한 상태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편목과정 출신들이 대교회는 편법으로 넘어가고 자기들만 고통을 주는 총회라면서 고함을 치면서 위임목사는 기필코 한 학기 미필한 과목이수를 한 후 하라는 것이었다. 노회장도 그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김창인목사의 강력한 항의가 있었으나 이종윤의 만류로 겨우 회의가 마쳐졌다. 이종윤은 총신 학장에게 전화를 했으나 저녁 늦게야 통화가 되어 노회 결정을 이야기했다. 총신은 교수회를 거쳐 이종윤은 한 과목을 가르치게 하여 한 학기 학점을 주기로 했다고 한다. 이종윤은 즉시 항의했다. 학력이 부족하여 수업을 받으라 했으면 수강케 해야지 왜 속이는 일을 해야 하는가. 대학교 현직 총장이 총회법을 합리화 하기 위해 교육부법은 어겨도 되는 것인가. 결국 총신의 이상한 제의로 일이 점점 난감해졌다. 김창인목사는 즉시 당회를 소집하여 여러분은 목사를 택할 것인가 총회를 택할 것인가 물었다. 장로들은 우리에겐 목사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결국 기자들을 불러 놓고 김창인목사는 청천벽력같은 선언을 한다. 충현교회는 총회와 행정보류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 날 이후 총회는 수습위원회를 조직하여 수 십차례 이종윤을 찾아온다. 그러나 “1988년 4월20일 이종윤은 제2대 위임목사로 취임된 것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공포하노라” 라고 김창인목사는 위임식에서 선언한다. 충현교회는 10년간 건축부지를 매입하고 건축허가를 받지 못한 채 어려움을 받았다. 1988년 4월 현재 부채가 태산같아 이종윤은 내 앞의 홍해를 건너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다가 홍해작전을 명령받는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