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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2
죽도록 사랑(신앙)하고 죽도록 공부(이성)하려다가
목사 이종윤ㆍ박사 이종윤 - 목회자의 길7

대학졸업때 각 단과대학 대표들이 졸업소감을 연세 춘추에 싣게 되었다. 이종윤은 “나는 대학생활 실패자”라는 글을 썼다.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공부하고 싶어 대학입학을 했으나 돌이켜보니 사랑을 못한 것이다. 그가 사랑하려 한 분은 당신 하나님밖에 누구이겠느냐 하면서 죽도록 사랑(신앙)하고 죽도록 공부(이성)하려다가 둘다 못이룬 실패자로 교문을 나간다고 썼다. 교수들이 큰 걱정을 하면서 이종윤은 당시 학과장인 문상희교수에게 불려간다. “이군 학사고시(5.16직후 생긴 제도)에서 전국 일등을 했고 그러나 대학실패자이니 대학원 입학을 하라”는 명령을 하신다. 이종윤은 빨리 미국유학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당시 국가가 시행하는 유학시험도 합격을 했다. 헌데 갑자기 대학원 진학을 하라신다. 당시 대학원은 교수양성기관처럼 한 학기에 학과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한 두명을 뽑았다. 감신, 한신, 장신, 총신등에서 그 학교들은 대학원이 없어 1,2등하는 이들이 연세대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어떤 때는 10대1도 더 되는 경쟁이 심한 학과다. 그러나 이종윤은 선생님들의 말씀대로 대학원 진학을 했다.

전공은 신약신학, 지도교수는 Goodwin박사다. 하버드대와 옥스퍼드에서 연구하고 학위를 받은 성공회 선교사로 한국에 오신 분이다. 두 학기를 마칠 무렵 그 분은 안식년으로 떠나심으로 문상희 교수가 지도교수가 된다. 이종윤의 관심은 바울신학이다. 문상희 교수의 관심은 역사적 예수였다.

사제지간에 논문제목 정하는데 한 학기를 보냈다. 결국 찾아낸 제목이 『바울에게 있어서 역사적 예수문제』였다. 이종윤은 문상희 교수의 애제자로 조교 심부름을 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이 무렵 이종윤이 섬기던 충현교회는 이종윤을 중등부 지도로 임명한다. 그의 열심이 특심하여 목요회를 조직하여 서울에 있는 97개 중고등학교마다 목요일이 되면 충현학생들이 자기학교에서 필그림이라는 주간신문에 계재된 예배 모범을 따라 예배를 드렸다. 중부경찰서 유치장 전도를 시작하여 후에 경목회를 조직케하고 충현교회 김창인목사를 초대회장으로 추대케 한다. 을지로5가에 있는 메디칼센터에 학생들을 팀으로 조직하여 환자전도를 하므로 의료 선교회를 출범케 한다. 당시 충현교회 학생회는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보다 그 숫적이나 질적으로 우수한 학생회로 자타가 공인했다.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중고등부 동기수련회를 열어 뜨거운 학생신앙 운동이 뿌리를 내리게 했다.

충현교회 허준장로께서 답십리에 위치한 한영중고등학교를 인수하고 이종윤에게 기독교학교를 만들어 달라는 청원이 있었다. 이종윤은 학원전도가 얼마나 효과적인 것임을 포착하고 즉시 지도교수의 허락을 받고 고1영어, 고2독어 교사로 부임한다. 후일 교목실을 창설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채플이 있는 명실공히 기독교학교로 거듭났다. 이종윤은 허준장로의 제안을 받고 깊은 기도 후에 두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그것은 교사 인사권과 교목실 신설 건이었다. 두 가지가 충족되었을 때 이종윤은 방과후 수업까지 하면서 학생들을 사랑으로 키웠고 신앙을 심으려고 노력했다.
교회에서 함께 동역하던 고 홍종만집사(후일 목사가 되어 홍콩선교사로 파송된 후 질병으로 병사하심)께서 자기 조카와 한번 사귀면 좋겠다면서 이종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다음 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