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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9
최초의 대대교회 세우다!
목사 이종윤ㆍ박사 이종윤 - 목회자의 길5

전방 G.O.P를 순회 전도하던 중 벼랑에서 자살을 기도하던 박OO 특무상사를 만나 상담과 전도를 하였고 그분의 제안으로 그 해 성탄절엔 대대에 교회당을 짓게 된다. 대대장의 배려로 술, 담배를 안하는 병력20명을 매일 배당받아 수십리길 남방으로 내려가 나무를 베어다가 이종윤이 백지위에 그린 설계따라 얼어붙은 흙을 파고 물을 부어 흙벽돌을 만들어 불을 피워 말리면서 예배당을 지었다. 봄이 되었을 때 겨울에 지은 막사 대부분이 허물어졌지만 교회당은 워낙 정성을 들여 지은 집인지라 끄떡없이 견뎌냈다. 충현교회에서 긴의자 50개를 보내주어 250명이상 수용되는 보기 좋은 교회당을 짓고 야곱이 들판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벧엘교회라 간판을 걸고 500명이 안되는 대대원 중 300명 이상의 군인들이 주일과 수요일에 참여하는 대한민국 군 역사상 최초의 대대교회가 탄생케 된 것이다.

이종윤은 짧은 군생활을 최대한으로 아껴서 사용키로 기도하고 이를 추진한다. 그가 주둔하고 있는 강원도 금화지역은 전쟁의 피해가 심해 많은 젊은이들이 교육받을 기회를 놓친 이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는 동리를 찾아 금화중등학원이 개설된다는 광고를 써붙였다. 교육기회를 놓친 20대전후의 청소년들이 무료로 가르치는 중학교에 지원을 했다.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던 박순천의원이 선거 사무실로 사용하던 건물을 빌려 학교를 하려니깐 150명의 지원자를 소화할 수 없어 이종윤은 여학생은 단발머리, 남학생에겐 삭발을 조건으로 90명 학생을 선발하여 금화중등학원을 개설한다. 탱크부대 복무하는 육사출신 성도, 금화군청에 근무하는 소위 일류대학출신 공무원들을 만나 수학, 영어, 국어, 역사등 과목은 맡겼지만 성경, 음악, 농업을 강의할 교사를 구할 수 없어 이종윤은 자격이 없지만 자습을 해서 강의하고 실습도 한다.
특히 농업은 천안중학교시절 배운 과목이 생각나서 책을 읽고 읽으면서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으로 농사일의 전문적인 사람들에게 땅에 풀 한포기 심어 본 경험도 없는 이가 강의를 한다. 이종윤은 이들에게 농업의 기술보다는 정신을 심어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주지육림에 빠져 나태한 노름과 미신에 잡혀있었기 때문이라 진단하고 기도한 후 사단장을 찾아갔다. 이등병이 사단장 면담을 요청하자 정문 수위실에서부터 제제를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결국 그날 사단장을 독대하게 된다. 이종윤은 금화중등학원 개설을 했는데 개간할 농지가 없어 도와달라고 했다. 사단장은 즉시 작전참모를 호출하여 와수리에 있는 OO부대 앞 산등성을 좋은 일 하겠다는 군종하사관 명찰을 단 이종윤의 요청을 받고 목사님께 드리라고 명령한다. 군목은 대민 업무도 감당해야 한다는 조언까지 주시며 이종윤을 격려한다.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종윤은 90명 학생들에게 우리가 못사는 것은 게으름 때문이니 매일 새벽5시에 물통에 물을 가득 담고 막대기에 매달아 서로 어깨에 매게 한 후 “개척자의 참 바람은 목적이란 오직 노동, 춤가리 가리가리 춤가리 가리”라는 노래를 부르게 하고 일열로 농지를 향해 행군을 한다. 새벽훈련을 나온 군인들로 사람들은 착각할 정도로 비록 복장은 통일되지 않았지만 일사불란한 기드온의 군대였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