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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8
철저한 청교도적 삶을 살며
목사 이종윤ㆍ박사 이종윤 - 목회자의 길3

이종윤은 초등학교 시절 단거리 선수였다. 고등학교 시절에 교내 마라톤대회 우승, 서울시 단축 마라톤대회 일반부 포함하여 2등을 했다. 그러나 목사의 소명을 받은 후 그는 좋아하던 운동도 그쳤다, 그보다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러간 것 이외 영화관 출입은 없었다. 명작과 영소설 과목 이수를 위해 읽은 작품이외 삼류소설은 손에 든 적이 없었다. 이종윤은 목사로 소명을 받은 후 철저히 청교도적 삶을 소년시절부터 실천해 왔다.

그 당시엔 목사가 되려면 일반학과에서 학사학위를 얻고 요즘같이 신학석사(M.Div.)제도가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신학교(5년제)를 졸업하면 목사고시 자격을 얻는다. 이종윤이 섬기던 교회는 고려파에 속했었다. 그래서 부산고신을 가야 목사가 된다. 그러나 당시 고신측 경인노회가 총회와 행정보류 상태인지라 목사 후보생 추천이 불가능했다. 서울대 종교학과 신사훈박사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으나 종교학과는 목사되는 학과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종윤을 지도하던 김창인, 최훈 두 분 전도사는 연세대 신학과 진학을 독려했다. 당시 고려파가 총회에서 분리되어 나왔기 때문에 총회신학교는 이단처럼 생각하여 고려파 교회에 속한 젊은 엘리트들이 연세대 신학과로 몰려갔다. 이종윤은 대학교 3학년 진학을 하자 4 · 19학생혁명이 일어났다. 신과대학 신학회 회장은 (김찬국 학과장) 교수님이셨고 이종윤은 학술부장을 했다. 4.19의 와중에서 학내소요가 일어나 전교생이 스트라이커를 단행했을 때 이종윤의 리더쉽이 발휘되어 신과대와 의과대만 수업을 하게 되었다. 연세 역사상 처음으로 철야기도회를 한달간 가지면서 학생들을 설득하여 학교를 안정시켰다. 언더우드 3세(원일한)와 백낙준 총장이 신과대생들의 강의실에 들어와 울면서 고마워한 적도 있었다. 후일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관리위원장도 하고 신과대학 동문회장을 역임하고 그리고 자랑스런 연신동문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종윤이 섬기던 충현교회는 교육을 강조했지만 대학부는 위화감이 조성된다하여 조직속에 없었다. 이종윤은 대학부 신설을 교회에 건의하여 출발케 하였으나 교역자는 없었다. 대학부 토요집회와 주일 모임에 회장인 이종윤은 직접 지도를 했다. 상도동 뒤편에 있는 천애불구원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장애인 시설의 열악한 환경을 돕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자는 뜨거운 열심이 주일에 전차표를 미쳐 준비하지 못한 날엔 한강철교를 걸어서 건너 불구원에 아침 예배후 점심도 못 먹고 달려가 예배를 드리고 목욕을 시켜주고 저녁예배 전에 돌아오는 일들을 대학부 학생들과 계속했다.
이종윤은 토요일은 금식을, 주일에는 천애불구원을 가지 않는 첫째주일에 북을 메고 현재 장충체육관 자리로 나가 바위 위에 서서 북을 쳐서 사람을 모이게 한 후 전도연설을 한다. 북을 치면서 충무로5가에 위치한 충현교회 저녁예배에 20-30명씩 몰고 온다.

그는 대학시절 교수의 영향을 체감했다. 그래서 그는 50세 이전엔 teaching ministry(가르치는 사역)을, 50이후엔 pastoral ministry(목회사역)을 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시작한다. 교수가 되려면 박사학위를 가져야겠다고 판단하고 그의 노트엔 또 하나의 타이틀이 추가된다. 목사, 박사 이종윤이다. 후엔 그는 전주대학교 총장이 된다. 그는 이때 이미 교수가 되면 총장이 되어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 그 일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한다. 이종윤의 대학시절 별명은 이박사 어떤이는 이총장이라 불렀다.

4 · 19혁명 후 학내 소요가 계속되자 어느 정도 안정을 시킨 후 그는 군에 자원입대한다. 이때만이라도 애국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미국 유학을 가려면 군입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ROTC제도가 만들어지기 전 소위 S.O(OO으로 시작되는)군번이다. 논산훈련소 전반기 교육시 M1소총사격시험에서 교관이 갑자기 안경을 모두 벗으라 해서 낙제를 받아 심한 기합과 치욕을 당했다. 후반기 카빈사격시험에선 안경을 쓰고 사격을 시켜 특등사수가 되기도 했다.
(다음 호 계속)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