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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1
네가 가서 저 도성과 이 백성을 구하라
목사 이종윤, 박사 이종윤 - 목회자의 길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날 이후 이종윤을 흔들어 깨우시기 시작하신다. 그는 깊은 죄책감에 빠져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저 학생이 나보다 무엇이 나은지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이었다. 이종윤은 나도 기독교인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러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의 두 분 누님들은 교회에서 찬양대원으로 봉사도 했지만 소위 양반집 자식이 교회를 간다는 것은 쉽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해 크리스마스 때 성환장로교회는 예배당이 좁아 극장을 빌려 성탄절 행사를 했다. 동리극장이라 쉽게 들어가 보았다. 모세 연극을 하는데 이종윤의 라이벌 되는 친구가 모세 역을 맡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만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훌쩍이면서 한 모퉁이에서 실컷 울었다.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어 그는 그의 결심의 일단을 노트에 적는다. “나도 교회에 다닐 것이다.” 1951년 1월 첫째주일은 이종윤의 새 인생 출발일이었다. 주일에 교회에 혼자 찾아 갔으나 아무도 그를 인도하는 이가 없어 교회에 새로 사다 놓은 종을 발길로 걷어찼더니 딩- 하며 울리는 소리가 나자 사찰이 뛰어나와 “이놈! 예배시간에 예배 안 드리고 왜 장난을 하느냐”면서 등을 떠밀어 교회당으로 들어갔다.

그 날 선생님(목사님 따님)은 에스더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너희들도 나라를 구한 에스더처럼 살라” 하셨다. 이렇게 해서 이종윤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아버지가 남겨 놓은 유산을 친척들이 하나씩 나누어가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버지 없는 서러움을 몸으로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자녀들의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성경암송대회에서 상을 타고, 고등학교 졸업 전 성경 10회 통독을 목표로 성경읽기와 성경통신강좌를 신구약 세 번 수료를 하겠다는 결심은 이루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의 짝이 자살을 하여 화장터에서 재를 함에 담아 들고 담임선생님과 함께 뚝섬에 가서 작은 조각배를 빌려 타고 한강에 재를 뿌릴 때 그의 인생은 또 한 번 변화의 계기를 맞는다. 그 날 한강에서 돌아온 이종윤은 성경책 한권만 들고 삼각산에 가서 글자가 보일 때까지 성경을 읽으면서 그리고 밤엔 계속 기도를 통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장안, 휘황찬란한 네온 불빛으로 휩싸인 그 곳이 이종윤의 눈에는 소돔 고모라로 보였다. 그는 “네가 가서 저 도성과 이 백성을 구하라”는 강한 음성을 기도 일주일 만에 영으로 듣게 된다. 후일 이종윤은 그것을 소명이라고 확인하였다. 그때 그는 자기 노트 표지마다 목사 이종윤이라고 쓴다. 그 결심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