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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8
서울교회여, 일어나 함께 가자!
특별새벽 기도회 말씀 요약

11. 22 (월)
인간의 본질적 사명

창세기 1:27-31


세상 모든 사물에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처럼,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도 인생의 목적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내 사명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사명을 잘 감당 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로써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에서 우리는 사명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창조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누군가의 보탬이나 도움이 아닌, 홀로 계신 하나님의 단독적인 역사가 바로 창조입니다.
둘째,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신(Creatio Ex Nihilo) 창조입니다.곧 창조는 하나님의 전능입니다.
셋째, 질서 있는 창조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속에 운행됩니다.
본문 말씀에서 특히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창조’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피조 세계는 선하며, 특히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지으신 인간에게는 하나 님의 속성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격성입니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지적인 요소가 하나님께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도덕성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경건하고 청결하라고 명하십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주신 삶의 모습입니다.
셋째, 영성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간 존재이며,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격성과 도덕성, 영성이 곧 하나님을 닮은 형상이며 인간 본질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고귀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인생의 목적, 즉 사명을 주셨습니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존재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며 삶의 기쁨과 보람을 얻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거나 한탄하시게 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둘째,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이 더불어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더 아름답고 더 안전한 세상으로 만들어 가야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셋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환경이 아무리 풍족해도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명을 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의 사역에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사명들을 잘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 비결은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죄가 생겨났고, 미움과 시기, 살인과 죄악들이 세상에 가득하게 됐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출발점은 하나님과의 조화로움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오직 십자가로 가능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고, 하나님과의 본래적인 관계로 복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첫째, 회개입니다
회개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마디도 ‘회개하라’였습니다. 마음과 뜻을 돌이켜 전심으로 드리는 회개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죄를 깨닫지 못하거나, 죄를 깨달았지만 뉘우치지 않는 완악함이거나, 죄인줄 알면서도 거절하는 교만함입니다. 우리 삶에서 이러한 무지와 완악함, 교만함을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을 성찰하며, 회개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믿음입니다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예수 그 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고, 화평을 누리며,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고, 화평을 누리는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명자의 인생은 회개와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회개와 믿음 가운데 사명자로 살아가는 축복을 모두가 누리시길 바랍니다.

11. 23 (화)
예배드리는 백성들

이사야 43:16-21


기독교 신앙의 근본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은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4)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셨고,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생명을 구원해 주신 분임을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을 지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근본적인 응답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란, 예의를 갖추어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예식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처음부터 영광 받으시길 원하셨습니다. 창 4장에서 최초의 인간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가장 먼저 한 행위가 예배였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명령도 성막을 지어 어디서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요 6장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우리가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우선적인 관심사가 예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43장에서도 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두 가지 사건이 나타납니다. 16절에서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고,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신다고 합니다. 17절에서는 군대를 어떻게 하나님이 무찌르셨는가를 말씀하십니다. 이는 곧 출애굽 당시 바닷물을 갈라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18, 19절에서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새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신다고 하십니다.
곧 바벨론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금 자유케 하시고 돌아오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바다가 가로막을 때에는 바닷물을 갈라 길을 만드시고, 물이 없는 광야에서는 물을 만들어 주셔서 백성들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찬송이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 부르는 노래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하나님께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찬송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의 첫 번째 사명, 첫 번째 헌신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렇기에 예배는 모든 신앙 생활의 시작이며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하늘의 성도들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송하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첫째,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히 11:6)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을 확실히 믿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 전심전력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형식이나 절차가 아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셋째,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이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다스리심을 믿고 드리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은혜로 우리의 영혼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예배할 때 느껴야 합니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의 완성이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몸으로 산 제물로 바친다는 의미는 내 삶, 일상의 모든 모습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예배가 될 때 비로소 영적인 예배가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예배합시다. 큰 믿음으로, 전심을 다해, 진실하게 예배드림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예배자가 됩시다. 나아가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해 예배의 완성을 이루어 날마다 주의 영이 임재하는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배는 신앙의 출발이고 완성입니다. 예배의 성공이 신앙의 성공입니다.



11. 24 (수)
교회로 부르시는 주님

마태복음 16:13-20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회에 소속된 지체들입니다. 교회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면서 평생을 교회와 더불어 살아갑니다. 또 우리를 교회의 지체로 부르신 주님은 우리에게 지금보다 더 좋은 교회를 이루도록 명령하시고 기대하십니다. 그래서 직분도 맡기시고 은사도 주시며 다른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며 협력하게 하십니다.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인데 교회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고, 바로 오늘 본문에서입니다.

1.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모인 공동체입니다. 이 성도의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 백성의 무리 등으로 부릅니다.
1) 예수님은 교회가 ‘반석 위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이며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공동체’ 라고 하셨습니다. 즉 진리에 터하고 주님께만 소속되었으며 무너지지 않는 공동체입니다.
2) 바울 사도는 엡 1:23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렀습니다. 골 1:18은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고 했습니다. 즉 교회와 그리스도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거룩한 연합체이며 교회는 언제나 그리스도께 절대 순종의 실천적 공동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3)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교회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라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신의 도시’라는 그의 저서에서 세상 나라가 흥망을 반복해도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는 영원함을 역설했습니다.
4) 칼빈Calvin은 소위 어머니 교회론을 가르쳤습니다. 교회가 모든 성도들의 어머니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며 사랑으로 돌보는 것처럼 교회도 성도들의 어머니로서의 정체성 위에서 존재하고 사역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5) 최근의 신학자들 중에는 교회를 계시 공동체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는 계시적 사명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2. 더 좋은 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지금의 교회보다 더 좋은 교회로 성숙시켜 나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자라가야 함을 많이 가르칩니다. 믿음의 진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성숙함을 나타내라 등의 표현은 더 좋은 교회로 나아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좋다’는 말은 아름답다, 선하다, 탁월하다 등의 뜻을 내포합니다. 이런 교회로 가야합니다.

1)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이 언제나 명확해야 합니다
16절에서 주님은 ‘내가 내 교회를 세운다’ 고 하셨습니다. 세우시는 분도 주님이시며 소유도 주님의 것이어서 ‘내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지배하면 그리스도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세습과 사유화를 한사코 반대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로 주의 종임을 표현하나 실제로 끝없는 지배 욕의 유혹 앞에 있습니다. 늘 자기를 부인하고 욕망을 쳐서 복종시키며 그리스도의 주권 앞에 겸손히 순종하며 주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2) 진리의 터 위에 서야 합니다
주님은 ‘내가 내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운다’고 하셨습니다. 반석이란 무너지지 않는 기초입니다(마 7:24-27). 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교회의 기초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영원한 진리뿐입니다. 이론들도 정치체제도 물질도 교회의 반석일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요소들을 교회가 의지하고 자랑하면 교회가 타락하고 무너집니다.

3)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란 악한 영들의 권세와 세상의 힘을 의미합니다. 이런 세상의 힘을 이길 힘은 오직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부족할수록 세상의 영향력이 증대됩니다. 예수님은 막 9:29에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영이 임하시는 곳에 세상의 영들이 소리 지르며 떠나게 됩니다.



11. 25 (목)
배우며 가르치는 교회

사도행전 28:30-31


교회가 해야 할 많은 사명이 있습니다. 교회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고 미래를 보장하는 사명 중의 하나가 가르치는 사역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계승과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을 양육하는 두 측면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도 교육의 중요성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대한민국 사 교육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서 전국의 학생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이곳에 우리 교회를 두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교육 선교의 기치를 들어야 합니다.

1. 사도행전의 교회들
사도행전에 여러 교회들이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매우 특징적이고 중요한 교회들이 있는데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 로마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교회들의 어머니교회로서 여러 교회들을 영적으로 지- 5 -도하는 구심적 역할에 성실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선교의 중심교회로 활동했으며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일에 기여했습니 다. 로마 교회는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 위치했기 때문에 세계 교회의 중심교회로서 그 책임을 잘 감당했습니다.
이 세 교회의 공통점이 있는데 예루살렘 교회는 행 2:42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고 했고 안디옥 교회는 행 11:26에 ‘큰 무리를 가르쳤고’라고 했으며 로마 교회는 본문에서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더라’고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교회들이며 큰 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한 교회들의 공통점이 ‘가르쳤다’라는 점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분부에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가르침은 사명입니다.

2. 우리나라 교회 학교들
우리 교단의 교회학교 상황은 다른 교단들에 비해서 매우 양호한 편입니다. 그런데 교회학교의 위축과 축소 속도가 무섭습니다. 부서에 관계없이 심각합니다.
출산율 저하와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 입시 제도의 영향 등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만 교회가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원인입니다. 그런데 이 교육의 실패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오게 됩니다. 왕하 21에 므낫세 왕의 역사가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12세에 즉위하여 55년간을 재위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소개하는 첫 구절인 왕하 21:2에 ‘므낫세 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라고 시작합니다.
왕하 21:16에는 그의 통치 55년을 총평하면서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왕하 24에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침공해 초토화시켰습니다. 왕하 24:3-4에는 이런 국가적 재난이 므낫세의 지은 죄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이 사건은 므낫세 사후 60여 년 후에 생긴 일이지만 이 일의 원인을 므낫세가 만들었다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므낫세는 유명한 히스기야 왕의 아들입니다.
히스기야는 대표적인 신앙과 기도의 사람이었지만 12살 어린 아들에게 그의 왕위는 물려주었으나 그의 신앙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못했고 그것이 시대의 비극과 망국의 원인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고 교육 선교의 사명감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3. 좋은 교육을 위한 지침들
교육은 누구나 자신 없어 합니다. 모두가 어려워하고 잘 했다 말하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마7:28,29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탁월했던 것은
1) 성경 지식이 풍성했고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셨기 때문이며
2) 매우 탁월한 교수 방법을 사용하셨기 때문이며
3) 깊은 기도로 영혼을 사랑하시는 중심이 항상 뜨거웠으며
4) 가르치시는 것과 살아가시는 삶의 내용이 일치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 스승이신 주님을 본받아 잘 가르치는 교회로 다시 일어서야겠습니다.


11. 26 (금)
선교를 향한 사명

마태복음 28:18-20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며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들에게 성령을 보내시며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행하시는 주님의 궁극의 목적은 인생들을 구원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려는 것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독생자를 주셨고 십자가 제물 되게 하셨으며 교회를 주셨습니다. 당연히 교회의 존재 목적도 복음 선교에 있고 열방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선교는 우리의 존재 목적이며 주님 오실 때까지 멈추지 못할 사명입니다.

1. 선교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선교란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예수 복음을 모든 경계를 넘어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 선교를 향한 명령은 마지막까지 교회에 주신 분부였습니다.
승천하시기 전 주님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고(막 16:15)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고...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으며(마 28:19-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최후의 당부는 교회의 종말적 사명이 복음 선교와 이를 통한 인류의 구원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고 계시며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길 소원하고 계심을 이해해야 합니다. 때문에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 역사는 복음이 지리적, 문화적, 민족과 혈통의 경계 등 모든 차별을 넘어 증거된 역사를 보여주고 우리에게 선교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 무엇을 전하는가?
오늘날 선교라는 용어는 너무나 다양하게 사용되고 지나치게 남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사익을 추구하면서 선교라는 용어를 남용하는 것은 옳지 못하나 다양한 분야의 선교가 필요함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분야의 다양한 선교가 필요하지만 핵심과 결론은 예수복음이어야 합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사명을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하는 것’으로 생각 했고(행 1:22) 오순절 설교에서 베드로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라고 했습니다(행 2:36). 심지어 바울은 고전 2:2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했습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를 이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롬 1:16)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믿는 개인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그 공동체와 시대의 문명을 새롭게 하셔서 구원받은 세상이 되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는 우리 개인이 구원받는 것은 물론이요 이 시대가 가진 모든 문제의 해답도 예수 복음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가 정답이며 지역교회가 세상의 희망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3. 전도자의 자격
복음 전하는 사람의 세상적 자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자신이 복음과 구원을 확신해야 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그 중심을 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일을 친히 주관하시며 역사하실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특히 복음선교에는 전도자의 자기희생이 수반되어야 결실이 가능합니다. 행 20:24에서 바울은 ‘이 사명을 마치려 함에는 목숨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께서 전도를 명령하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믿음 붙들고 사는 사람이 전도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11. 27 (토)
즐거워하는 교회

느헤미야 8:5-12


신앙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복음은 우리에게 언제나 기쁨을 선물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모든 신앙인은 언제나 감사하고 기뻐하고 살아감을 늘 보게 됩니다. 삶이 기쁜 것은 삶을 희망으로 살게 되고 긍정과 낙관으로 적극적인 인생 경영을 하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특히 우리는 지나치게 율법적이고 심각하고 우울한 모습으로 살 때가 많습니다. 복음 안에 누리는 감사와 즐거움이 교회 안에 충만하고 늘 잔치집 같은 교회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1. 느헤미야 시대의 수고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정부의 고위관료였으나 예루살렘 성의 수축과 재건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벽 재건 사역을 52일 만에 완수하는 기적 같은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방해와 모함 그리고 내부적 혼란이 있었지만 기도하고 노동하며 이 일을 단기간에 이루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율법의 말씀을 듣는 큰 성회를 열었습니다. 학사인 에스라가 말씀을 읽고 설명할 때 백성들은 아멘으로 응답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감사했고 제대로 말씀 듣고 은혜받게 됨을 감격스러워했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이 일을 이루었기 때문에 감정이 격해졌겠지만 도무지 불가능한 일을 이루게 하신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광야에도 길을 만드시고 바다 가운데에도 마른 땅이 있게 하십니다. 사막에 꽃이 피게 하시고 황무지에도 울창한 숲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지나간 삶을 돌아보면 눈물겨운 일이 많았지만 그 눈물 골짜기를 지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했던 빠른 예루살렘 회복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2. 다시 말씀으로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회복한 그들이 수문 앞에서 말씀 듣는 성회를 열었습니다. 8-9절에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 잔치의 날에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다시 말씀으로 돌아갈 것을 다짐하며 울며 결단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재 출발을 생각하면서 제시한 첫 과제가 ‘다시 말씀으로 Reconfirm’입니다. 이제 우리는 회복의 흥겨운 잔치를 마감하고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는 옷깃을 여미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복의 본질은 신앙의 회복에 있고 그 핵심은 말씀이 우리에게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는 그들의 실패가 말씀을 떠난 것에서 기인했음을 발견한 솔직한 자기반성의 결과입니다. 솔제니친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등 진 결과로 인류가 공산주의의 저주를 자초했다’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이제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하며 말씀 성회를 열었습니다.

3. 이제는 울지 말자
9-10절에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 울지 말고 즐거워하며 앞날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심은 슬픔과 근심이 사라지게 하시고 우리 삶을 기쁘게 하시려 함입니다.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우리를 돕는 자 되시며 구원과 은총을 베푸심을 믿고 울지 말고 즐겁게 교회 생활을 이어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