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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7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함께 하리라
목사 이종윤ㆍ박사 이종윤 - 목회자의 길13

Deans court는 전통있는 기숙사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기숙했던 곳으로 이종윤은 북해가 바라보이고 종교개혁때 무너진 cathedral이 전면에 있는 방을 사용했다. 미국에서는 room-mate가 있었으나 영국기숙사는 독방제도다. 때로 눈이 너무 피곤해서 안경을 몇 번 바꾸어도 보았지만 효과가 없어 눈 때문에 글자가 보이질 않아 울기도 했다. 도서관의 책도 많지만 독일어 책을 찾다가 없으면 도서관의 신학부 담당사서에게 적어내면 두 주이내에 동독에서까지 책을 우송 해 주니 공부할 맛이 났다. 아침에 도서관 문이 열리면 항상 제일 먼저 입실하여 전세계에서 도착한 정기 간행물(Periodical Journal)을 먼저 읽고 4층 연구실로 들어가면 여름엔 10시까지 해가 있으나 겨울엔 오후2시30분만 지나면 어둠이 깔린다. Gown & Grey(까운과 회색)이라는 별명을 가진 세인트 앤드류스는 대학과 하늘이 항상 잿빛으로 흐린 날씨로도 유명하다.

이종윤은 St. Mary's College(신학부)에서 신약을 연구했다. 책상이 중세기때부터 사용하던 통나무로 두께가 15cm정도 되고 의자도 고정되어 키 큰 유럽학생 체격에 맞추어서 인지 항상 선 채 엎드려서 글씨를 써야했다. 책상엔 죤 낙스의 이름도 새겨있고 많은 졸업생들 이름을 칼로 파서 새겨놓아 이종윤도 그 흔적을 남겨 놓았다.

독일 튜빙엔 학파를 창시한 F.C. Baur와 D.F. Strauss의 책을 구해 읽었지만 그들의 출판되지 않은 강의 노트를 연구해야 그들이 주장한 바울의 신학과 오해된 역사적 예수문제를 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튜빙엔에 가서 한 학기 연구할 계획서를 지도교수에게 제출하고 E.Jungel교수에게 편지를 하여 지도해 줄 것과 오는 길에 암스텔담에서 『바울과 예수』라는 책을 출판한 리더 보스 교수를 만나 지도 부탁을 하고 독일로 출발한다.

문제는 여비가 미국의 아내로부터 도착하지 않아 이종윤은 기차표 한 장 사고 15pound를 들고 스코틀란드에서 잉글랜드를 거쳐 도버해협을 배를 타고 지나 다시 유럽을 횡단하는 기차로 스튜트가르트까지 가서 다시 갈아타고 튜빙엔역에 도착한 시간은 토요일 새벽5시쯤 되었다. 독일의 날씨도 스코틀란드와 별차이 없이 비가 내리는 음산한 늦겨울 날씨였다. 기숙사 예약이 되어 있어 기차역에 내리기는 했으나 택시값과 기숙사비 지불할 것이 비로소 걱정이 되었다. 열차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도웁는 손길을 기다렸다. 튜빙엔역에서는 손님이 열 명정도 내렸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이종윤은 제일 늦게 내려서 천천히 플랫폼으로 나갔다. 키가 큰 어떤 젊은이가 이종윤의 앞을 가로 막고 서서 “당신이 이 기차에서 내린 마지막 사람이냐”고 좀 투박한 독일어로 묻는다. 이종윤은 즉시 독일사람은 아니로구나 직감하고 영어로 “그런 것 같다”고 대답을 하니 그도 유창한 영어로 응수하면서 “어디서, 무엇하러 이 도시에 오느냐”고 묻는다. “나는 신학을 공부하는 한국학생인데 스코틀란드에서 이곳에 연구차 왔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기는 “화란사람인데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지금 이곳에 연구차 왔는데 오늘 이 기차에 친구가 온다 해서 마중을 나왔는데 오질 않았으니 네길이 바쁘지 않으면 자기 집에 가서 쉬었다 가면 어떻겠느냐”고 뜻밖의 제안을 한다. 이종윤은 하나님이 보낸 천사로 생각하고 그가 갖고 온 차를 타고 그의 집에 가서 몇일 밤 기차 안에서 새우잠을 잤으니 피곤한 몸을 목욕도 하고 독방의 침대까지 내주어 한 잠을 자며 푹쉬었다.

그의 말이 생각이 난 이종윤은 나도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했는데 당신은 어느 학교에서 공부를 했느냐고 물으니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했고 거기서 아내도 만났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중국인이었다. 그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것처럼 잘 준비된 중국음식 대접을 받았다. 그가 오늘은 토요일인데 Korean들이 예배드리는 곳이 있는데 가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가자고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한국유학생 가족20여명이 모여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데 한신대 박봉랑 박사님이 그곳에 연구교수로 와 계시면서 그날 설교를 하시기로 주보에 난 것을 보고 기대를 갖고 예배에 참여했다. 예배 10분전쯤 박봉랑 박사께서 이종윤에게 오늘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날이니 특별강사로 모실테니 설교를 하라고 한다. 이종윤은 극구 사양했으나 어른의 명령에 결국 순종을 한다. 예배후 저녁 dinner파티가 열려 불고기 포식을 하게 되어 잃었던 기력이 회복되었다. 한국인 간호사로 그 지역 병원에서 섬기는 김모 집사님이 오늘 설교에 정말 은혜받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오늘 아침 튜빙엔에 내리셨다니 오늘은 토요일이라 돈 바꿀 시간도 없으셨을터이니 제가 어제 수당을 받은 것 집에 그대로 갖고 있으니 몇일만이라도 쓰시라면서 자기 집에 가자고 한다. 실은 은행에서 바꿀 돈도 없었지만 은행문을 닫는 토요일인 것은 사실이니까 못 이기는 척(?) 하면서 돈을 받고 보니 한달 생활은 족히 할 수 있는 액수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함께 하리라 하신 주님의 약속은 결코 공수표가 아니었다.

도서관 밖으로 갖고 나갈 수 없도록 특별한 방에 소장된 19세기 손으로 쓴 흘림체 강의 노트를 읽는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하도 진도가 안나가서 몇 번이고 포기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볼 수 없어 흘림체 독일어 강의 노트를 영역하면서 읽어 내려가는데 복사도 할 수 없고 이런 속도라면 몇 년은 걸려야 할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눈을 비비면서 읽다보니 두 주째는 조금 속도가 빨라졌음을 느꼈다. 한 달이 지나면서는 영어만큼은 안되지만 그런대로 취사선택하며 읽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한 학기를 지내면서 E. 융헬 교수를 만나 Sprach ereignis(speech-event) 학설을 배우게 되고 토론을 했다.

세인트 앤드류스에 있는 동안 둘째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엄마가 미국에 있고 아빠는 영국에 있었다하여 미영이라 이름했고, 셋째는 아빠가 독일에 있을 때 태어나서 미경으로 지었다. 첫째는 모세가 태어나기를 소망하여 모세의 누이 이름처럼 미리라 했다. 가난한 유학생활 동안 세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종윤은 영국유학 3년반만에 박사학위(Ph.D.) 논문의 초고를 만들어 매월 한 차례씩 지도교수의 검증을 받은 터라 그것을 들고 미국의 가족들에게 돌아온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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