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소개
서울교회 소개
서울교회의 철학
서울교회가 있기까지
주요활동
교회 오시는 길
교역자/장로
원로목사 소개
담임목사(안식중)
교역자 소개
장로 소개
선교사 소개
예배 안내
예배 및 집회시간 안내
교회 소식
교회행사/소식
모임/교인소식
순례자
언론에 비친 서울교회
주간기도
서울교회 사태
Home > 교회소식 > 컬럼
2010-07-25
목사 이종윤, 박사 이종윤
목사 이종윤, 박사 이종윤 - 목회자의 길1

이종윤은 1940년 8월23일 경주 李氏 이규남(李圭南)씨와 박귀순(朴貴順)씨의 10남매 중 여섯 번째로 충남 천안군 성환면 성환리 449번지에서 태어났다. 조부 이래영(李來榮)씨는 한학자로 서당 훈장을 지내신 유학자였다.

1945년 광복의 기쁨과 함께 주변 친구들이 모두 학교에 입학을 하자 초등하교 입학 적년기에 미달한 이종윤은 학교 보내달라고 3개월을 매일 울면서 부모님께 졸라서 가입학생으로 교장선생님의 허락만 받고 한 자리를 마련하여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무성영화시대인지라 동리에 영화가 상영될 때 들은 변사의 구성진 목소리 흉내를 잘 내었고, 부친이 행사장에서 연설하시는 것을 따라서 집에서 멋진 목소리로 연설을 하면 아버지는 제자식이기 때문이었겠지만 항상 만족스런 표정으로 대통령감이라고 추켜 세워주시고 상도 주셨다. 이종윤은 고등학교시절 웅변반에 들어가 당시 산림녹화운동장려 웅변대회에서 서울시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6 · 25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종윤의 부친은 삼성상회(三成商會), 삼성정미소, 직산에서 금광사업도 하시는 기업인이었다. 집 앞마당에 켜 놓은 라디오 앞에 동리사람들이 모여와 삼팔선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들으며 갖가지 소문들을 얘기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던 이종윤은 나도 피난 좀 가보았으면 좋겠다는 철부지 생각을 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가족들은 조부가 사시는 아산군 음봉면 쌍룡리로 보내고 동리 유지들을 트럭에 태우고 남쪽으로 피난을 떠난다.

9·28수복 시 그의 부친은 국군의 뒤를 쫓아 고향으로 왔으나 인민군 패잔병들이 숨어 있던 집을 미군 공군기가 폭격할 때 옆집에 피신하던 아버지는 심한 충격을 받아 결국 그해 세상을 떠나셨다. 이종윤은 어려서 일찍 부친의 죽음을 보면서 풀잎의 이슬같은 인생을 생각한다.

초등학교 4학년때 반장으로 선임됐으나 서울에서 전학 온 학생에게 반장의 자리를 내주면서 심한 질투감과 모욕감을 견딜 수 없어 당시 자기 집에 설치해 놓은 탁구대를 이용하여 친구들을 모아 정월 대보름 지불놀이를 하자고 꾀어 그 친구의 머리통을 기름걸레를 불태워 넣은 깡통으로 내리치는 악을 행한 적도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순례자는 매주 서울교회20년사 편찬위원회가 취재한 목사 이종윤, 박사 이종윤의 일대기를 연재한다. 성도님들의 많은 애독 바란다.

-편집부-
한국기독교학술원 제58회 학술 세미나
제11회 한국기독교학술상에 윤석준 총장 수상
제 57회 학술원 공개 세미나 COVID-19 시대를 극복하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제57회 한국기독교학술원 학술공개세미나
제57회 한국기독교학술원 학술공개세미나
“‘매 맞는’ 교회, 회개의 메시지 들어야”
시작하는 사람
이종윤 목사 팔순 기념 논문집 발간
총회 재심재판국, 이종윤 원로목사에 대하여 무죄판결 하다
<순례자 375> 원수의 행악에 대응하는 자세